사일런트 페이션트 책 표지

[책 리뷰] 사일런트 페이션트 The Silent Patient – 알렉스 마이클리디스

안녕하세요, 책 읽는 제제입니다. 😀

오늘 소개할 책은 <사일런트 페이션트>입니다.

심리 스릴러 장르의 책 중에서도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몰입감과 예측 불가능한 전개로 많은 사랑을 받은 작품이죠. 한순간에 말문을 닫아버린 여인, 그리고 그녀의 침묵 뒤에 숨겨진 진실. 과연 그녀는 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걸까요?

그럼, 리뷰 시작할게요.

항목 내용
제목 사일런트 페이션트 (The Silent Patient)
작가 알렉스 마이클리디스
출판사 해냄
장르 심리 스릴러, 미스터리

<사일런트 페이션트> 줄거리

유명 화가인 앨리시아 베런슨은 모두가 부러워할 만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인기 패션 사진가인 남편과 함께 런던의 고급 주택가에 자리한 아름다운 집에서 지내며 성공적인 커리어를 이어가고 있었죠.

그러나 어느 날 밤, 남편 가브리엘이 촬영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순간, 그녀는 그를 향해 다섯 발의 총탄을 쏘았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로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앨리시아의 침묵은 단순한 비극을 넘어 미스터리로 변했습니다. 그녀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자, 세간의 관심은 더욱 커졌습니다. 사람들은 그녀의 입을 열기 위해 애썼지만, 그녀는 묵묵부답이었죠.

아이러니하게도 그녀의 그림은 더 높은 가치를 인정받았고, 그녀는 ‘침묵의 환자’라는 별명과 함께 언론의 조명을 피해 폐쇄적인 정신병원 ‘그로브’에 수감됩니다.

이때, 범죄 심리 치료사인 테오 파버가 그녀를 맡게 됩니다. 오랫동안 그녀의 사건에 관심을 가져온 그는 앨리시아의 침묵을 깨고 진실을 밝혀내고자 합니다. 하지만 그녀의 입을 열기 위해 깊이 파고들수록, 테오 자신도 예상치 못한 어둠 속으로 빠져들게 됩니다.

침묵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사일런트 페이션트>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단연 앨리시아의 ‘침묵’이에요. 그녀는 남편을 살해한 후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죠. 심리 치료사인 테오는 그녀가 다시 말을 하도록 돕고 싶어해요.

하지만 과연 앨리시아는 ‘말할 수 없어서’ 침묵하는 걸까요? 아니면 ‘말하지 않기로’ 선택한 걸까요?

앨리시아의 침묵은 단순한 거부나 충격 반응이 아니라, 어쩌면 그녀가 세상과 맞서 싸우는 유일한 방식이었을지도 몰라요. 말이라는 건 상대방이 이해할 거라는 전제가 있을 때 의미가 생기잖아요.

하지만 그녀가 살아온 환경을 보면, 그녀의 진심이 받아들여진 적이 없었어요. 그러니 침묵이 그녀에게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되었을 수도 있겠죠.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고 했어요. 이 말을 떠올려 보면, 앨리시아는 단순히 말을 잃은 것이 아니라, 진실을 보호하기 위해 침묵을 선택한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그 진실은, 어쩌면 말로 표현하는 순간 왜곡되거나 사라져버릴지도 모르는 것이었겠죠.

침묵은 말보다 더 큰 힘을 가질 수도 있다는 걸 앨리시아를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방식으로 진실을 지켜내고 있었던 거예요.

하지만, 침묵이 언제나 보호막이 되어줄 수 있을까요? 침묵 속에서 자신을 지킬 수는 있어도, 세상과 완전히 단절된 채로 살아갈 수는 없겠죠. 이 책은 바로 그 경계에서 벌어지는 인간 심리의 가장 깊은 부분을 건드리는 것 같아요.

사랑과 집착, 그리고 감정의 속성

앨리시아와 남편 가브리엘, 그리고 그녀를 치료하려는 테오까지. 이 책을 읽다 보면 ‘사랑’이라는 감정이 얼마나 복잡하고 위험한 형태로 변할 수 있는지 알게 됩니다. 단순한 애정에서 시작된 감정이 집착으로 변하고, 결국 파괴적인 결과를 낳는 모습을 보면 좀 안타깝기도 하고 씁쓸하더라구요.

철학자 스피노자는 감정을 크게 ‘능동적인 감정’과 ‘수동적인 감정’으로 나누었어요. 능동적인 감정은 우리가 스스로 조절하고 통제할 수 있는 감정이라면, 수동적인 감정은 외부의 영향을 받아 우리를 지배하는 감정이죠. 즉, 우리가 감정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이 우리를 ‘소유’할 수도 있다는 겁니다.

앨리시아의 사랑은 처음에는 능동적인 감정이었을 거예요. 그녀는 남편 가브리엘과의 관계에서 행복을 느꼈고, 그의 존재 자체가 그녀에게 안정감을 주었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사랑이 절대적인 것이 되어버리면, 그 감정은 점점 수동적인 형태로 변하게 됩니다. 사랑이 ‘내가 선택한 감정’이 아니라 ‘나를 지배하는 감정’이 되어버리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순수한 사랑이 아니라 집착과 두려움, 그리고 절망으로 바뀌게 되죠.

스피노자는 감정이 우리를 지배하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자유롭지 못하다고 말했어요. 앨리시아가 가브리엘을 향한 사랑이 점점 두려움과 불안으로 변해갈 때, 그녀는 이미 자신의 감정을 통제할 수 없는 상태였던 것 같아요. 그리고 그 감정의 끝에는 극단적인 선택이 기다리고 있었죠.

또한, 테오 역시 마찬가지예요. 그는 처음에는 앨리시아를 도우려는 ‘의미 있는 사랑’을 가졌다고 생각했겠지만, 점점 그녀에게 집착하며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기 시작합니다.

마치 ‘나는 그녀를 구해야 해’라는 자기 최면을 걸듯이요. 결국, 감정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는 순간, 우리는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방향으로만 움직이게 되고, 그 끝이 반드시 좋은 결말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걸 이 책은 보여줍니다.

스피노자는 감정을 온전히 이해하고 다스릴 때만이 인간은 진정한 자유를 얻을 수 있다고 했어요. 사랑이란 감정은 분명 우리를 성장시키고 행복하게도 만들지만, 그 감정이 절대적인 것이 되는 순간, 우리는 그 감정에 사로잡히게 되는지도 모릅니다. 앨리시아와 테오가 보여준 모습처럼요.

생애 첫 설명서

“우리의 성격 형성은 고립된 상태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형성되고 완성된다. 그중에서도 보이지 않지만, 기억되지 않지만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존재가 있다. 바로 부모다.”

이 문장을 읽고 깊이 공감했어요. 부모님의 영향이 한 사람의 가치관과 자아를 형성하는 데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금 깨닫게 되었죠.

<사일런트 페이션트> 속 테오와 앨리시아는 둘 다 평범하지 않은 가정에서 학대를 받으며 자랐어요. 어린 시절, 가장 기본적으로 받아야 할 부모의 사랑과 안정감을 경험하지 못한 채 자랐고, 결국 이 결핍이 성인이 되어서도 그들의 삶을 지배하게 됩니다.

저는 어렸을 적 저희 가족이 감정 표현은 서툴렀지만 사랑을 받고 자랐다는 확신이 있었어요. 저희 가족은 무뚝뚝하고 애정 표현이 거의 없는 편이에요. 심지어 다른 사람들이 애정을 표현하는 걸 보면 어색해할 정도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랑이 없었던 건 아니에요. 어릴 때부터 한 번도 내가 사랑받고 있지 않다고 느낀 적이 없었거든요. 부모님의 행동과 말 속에서 자연스럽게 사랑을 배웠고, 그것이 저의 정서적 기반이 되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테오와 앨리시아의 경우는 달랐어요. 어른이 되고, 직장을 다니고, 결혼을 하며 겉으로는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듯 보였지만, 내면에는 여전히 과거의 상처가 깊게 자리 잡고 있었어요.

테오는 부모를 떠났지만, 여전히 아버지가 그의 뒤를 따라다니며 계속해서 그를 비하하는 것처럼 느꼈어요. Alicia는 가브리엘과 함께할 때 행복한 것처럼 보였지만, 감정 기복이 심했고, 히스테리를 보이기도 했죠.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신이 사랑받지 못할까 봐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조차 두려워했어요.

요즘 많은 사람들이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나 가정환경으로 인해 성인이 되어서도 상처를 안고 살아갑니다. 그래서일까요? 스스로를 돌아보고 위로하는 책이나 영상들이 점점 더 인기를 끄는 것 같아요.

어린 시절 치유되지 않은 상처는 결국 우리의 성격과 관계, 삶 전반에 영향을 미치게 되고, 때로는 정신적인 문제로까지 이어질 수 있으니까요.

부모님의 말과 행동은 한 사람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생애 가장 처음 접하는 설명서와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테오와 앨리시아의 이야기를 통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됩니다.
나는 어떤 설명서를 받고 자랐을까?”
그리고 더 나아가, 우리는 다음 세대에게 어떤 설명서를 남길 수 있을까요?

완벽한 이름과 결말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감탄했던 두 가지가 있어요. 첫 번째는 가브리엘(Gabriel)의 이름이에요. 그의 이름은 히브리어에서 유래했는데, ‘강한 사람’이나 ‘영웅’을 의미하는 *게베르(Gever)*와 신을 뜻하는 *엘(El)*이 합쳐진 이름이에요.

앨리시아가 예수님의 초상화를 그리면서도 그 얼굴을 가브리엘로 묘사했던 이유가 가브리엘이 앨리시아에게 영웅이자 신과 같은 존재였기 때문일꺼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녀의 삶에서 절대적 존재였던 그를 그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이 점에서, 작가가 이 캐릭터에게 Gabriel이라는 이름을 부여한 것은 너무도 완벽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두 번째는, 책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에요.

어린 시절의 테오와 눈송이,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의 테오.

어릴 적, 테오는 손에 눈송이를 쥐면서 이런 생각을 해요. “행복이란 손 안에 넣으면 금방 사라져버리는 것 같다.” 그 순간이 지나면 다시 차가운 현실이 남는 것처럼요. 그런데 이 장면이 책의 마지막과 연결된다는 걸 깨달았을 때, 정말 소름이 돋았어요.

테오는 창밖의 눈을 바라보며, 그곳에는 자신이 모르는 행복한 세상이 있을 것이라 상상했어요. 자신이 아버지가 있는 그 집을 떠나기만 하면, 새로운 행복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믿었던 거죠. 하지만 결국 그의 삶은 그렇지 못했죠.

마지막 장면에서, 조사관이 앨리시아의 다이어리를 읽어주는 순간, 테오는 창밖의 눈을 손으로 잡고 미소를 짓습니다. 마치 어린 시절의 그 순간처럼요. 하지만 그 미소는 기쁨의 미소 보다는 허무한 생의 허탈함을 보여주는 미소가 아니었을까요? “아, 결국 이렇게 끝나는구나. 역시 내가 기대했던 행복이란 결국 이렇게 사라지는 것이었어.” 이런 느낌으로요.

그 장면 하나만으로도, 테오는 자신의 삶 전체를 돌아보았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아니, 어쩌면 그는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걸지도요.

책을 읽으면서 저는 앨리시아가 주인공이라고 생각했었어요. 그녀가 왜 말하지 않는지, 무엇을 숨기고 있는지가 가장 궁금했거든요.

하지만 이 마지막 장면으로 인해서, 제 머릿속 이야기의 주인공은 앨리시아에서 테오로 바뀌었습니다.

완벽한 이름, 완벽한 복선, 그리고 완벽한 결말.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정말 한편의 영화와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런 분들에게 이 책을 추천해요

✔️ 반전이 있는 심리 스릴러를 좋아하는 분
✔️ 인간 심리의 어두운 면을 탐구하는 이야기에 흥미를 느끼는 분
✔️ 빠른 전개와 몰입감 있는 스토리를 원하는 분
✔️ 한 번 책을 잡으면 끝까지 놓지 못하는 긴장감 넘치는 작품을 찾는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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