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레바퀴 아래서 책 표지

[책 리뷰] 수레바퀴 아래서 – 헤르만 헤세

안녕하세요, 책 읽는 제제입니다. 😀

오늘 소개할 책은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입니다. 한 번쯤 들어본 적 있으시죠? 학창 시절 필독서로 접했거나, 제목만 익숙한 분들도 많을 것 같아요.

한스 기벤라트라는 한 소년의 이야기 속에는 사회가 만들어 놓은 틀 속에서 억눌린 개인의 고통과 방황, 그리고 꿈과 현실 사이에서 흔들리는 청춘의 모습이 담겨 있어요. 어쩌면 우리도 그 수레바퀴 아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진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책이예요.

그럼, 리뷰 시작할게요.

항목 내용
제목 수레바퀴 아래서
작가 헤르만 헤세
출판사 그책
장르 고전 문학, 성장 소설

< 수레바퀴 아래서 > 줄거리

한스 기벤라트는 섬세한 감성을 지닌 소년으로, 자연을 사랑하고 낚시를 즐깁니다.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아버지 밑에서 성장한 그는 학업에 뛰어난 재능을 보이며 신학교 입학을 목표로 치열한 경쟁을 견뎌냅니다. 결국 신학교 시험에 합격하지만, 엄격한 규율과 주입식 교육이 지배하는 학교 생활은 그에게 큰 부담이 됩니다.

그러던 중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친구, 헤르만 하일너를 만나게 되면서 그의 내면에도 변화가 찾아옵니다. 하일너와의 우정은 한스에게 새로운 시각을 열어주지만, 동시에 기존의 틀에 순응하며 살아가던 그를 점점 더 혼란에 빠뜨립니다.

설상가상으로 가까운 친구의 죽음과 하일너와의 이별을 겪으며 정신적 압박이 극심해진 그는 결국 학업을 중단하고 고향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하지만 익숙했던 고향에서도 그는 방황을 멈추지 못합니다. 우울감 속에서 떠돌던 그는 빈민가 사람들과 어울리며 새로운 경험을 쌓고, 엠마라는 여인을 만나 잠시 사랑에 빠지지만 이마저도 짧은 만남으로 끝나버립니다.

결국 현실을 받아들이고 기계공으로 일하며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 하지만, 육체적 노동과 내면의 갈등은 그를 더욱 지치게 만듭니다.

일요일, 동료들과 술을 마시며 잠시나마 웃음을 되찾았던 그는, 그날 밤 만취한 채 귀가하던 중 강물에 빠져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자유의지 vs. 운명

한스 기벤라트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계속 머릿속을 맴도는 질문이 있었어요. “우리는 정말 우리가 원하는 삶을 살고 있는 걸까?” 아니면, 사회가 정해놓은 길 위를 걸어갈 수밖에 없는 걸까요?

한스는 어릴 때부터 똑똑한 아이였어요. 주변에서는 그가 신학교에 가고, 훌륭한 학자가 될 거라고 기대했죠. 하지만 그건 한스가 원했던 삶이 아니라, 사회가 그에게 요구했던 삶이었어요. 한스가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생각할 틈도 없이, “이 길이 네 성공이야”라고 정해진 미래 속으로 떠밀려 갔던 거죠.

그런데 인간은 정말 자기 운명을 개척할 수 있는 존재일까요?

니체는 운명애(Amor Fati) 라는 개념을 이야기했어요. “너의 삶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라”, “모든 것은 네 선택이고, 네가 받아들이는 방식에 따라 운명이 달라진다”고요. 하지만 한스를 보면, 그는 애초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것처럼 보여요. 그의 삶은 정해진 틀 안에서 움직였고, 그 틀을 벗어나려 할 때마다 부딪히고 깨졌죠.

그렇다면, 자유의지는 환상일까요? 우리가 정말 자유롭다면, 우리는 왜 이렇게 비슷한 길을 걷고 있는 걸까요? 좋은 대학, 좋은 직장, 사회가 말하는 ‘성공’이라는 기준을 향해 열심히 달려가고 있는 우리 모습이, 어쩌면 한스와 닮아 있지 않을까요?

한스의 이야기는 과거의 것이 아니라,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것 같아요. 우리도 매 순간 선택을 한다고 믿지만, 사실은 사회가 만들어놓은 ‘정답’ 속에서 선택지를 고르고 있는 건 아닐까 싶어요.

한스가 바라본 자유

한스는 이런 꿈을 꾸었다. 친구 헤르만 하일너가 죽어서 들것 위에 실려 있었다. 그것을 본 한스는 가까이 다가가려 했으나 교장과 교사들이 그를 밀쳐냈다. 한스가 앞으로 나가려 할 때마다 그들은 한스를 아프게 후려쳤다. 그들은 신학교의 교사들만이 아니었다. 라틴어 학교의 교장과 슈투트가르트의 시험관도 있었는데, 모두 하나같이 화난 표정이었다. 갑자기 상황이 바뀌었다. 들것 위에 누운 사람은 익사한 힌디였다.

한스가 꾼 이 꿈은 제가 이 책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예요.

자유를 갈망하면서도 결코 닿을 수 없는 현실. 그리고 그를 옭아매는 사회적 틀과 억압. 하일너가 죽어 들것에 실려 있는 모습은 단순한 친구의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한스가 꿈꾸던 자유의 소멸을 보여주는 것처럼 느껴져요.

한스는 꿈속에서 하일너에게 다가가고 싶어 하지만, 교장과 교사들이 그를 밀쳐냅니다. 마치 사회가 그에게 “너는 그 길로 가서는 안 된다”고 강요하는 것처럼요. 현실에서도 한스는 학업과 성공이라는 틀 속에서 벗어나려 하면 할수록 더 큰 저항에 부딪혔어요. 그가 자유를 꿈꾸는 순간, 오히려 더 많은 손길들이 그를 막아서고, 억누르고, 심지어 상처를 주는 모습이 너무나 상징적이에요.

특히, “그들은 신학교의 교사들만이 아니었다”는 부분이 인상적이에요. 한스를 가로막는 사람들은 특정한 몇몇이 아니라, 그가 태어나고 자란 사회 전체라는걸 보여주는 부분 같아요. 그는 어릴 때부터 “올바른 길”로 가야 한다는 압박을 받았고, 그 틀에서 벗어나려 할 때마다 또 다른 힘들이 그를 되돌리려 했어요. 마치 끊임없이 개인을 짓누르는 사회의 거대한 수레바퀴처럼요.

그런데 꿈속에서 하일너의 모습이 갑자기 힌디(익사한 친구)로 바뀌는 것도 의미심장해요. 한스는 자유를 꿈꾸지만, 그 꿈은 결국 또 다른 좌절로 바뀌죠. 죽음을 통해서만 자유로워질 수 있는 삶. 자유를 사랑했던 소년이 사회의 기대에 맞춰 살아가다, 모든 걸 잃어버린 후에서야 비로소 자유를 향해 손을 뻗어 보지만… 이미 늦어버린 거죠.

이 장면이 특히 마음에 남는 이유가 있어요. 한스의 삶과 그의 모든 감정이 이 꿈 하나에 압축되어 있는 것 같거든요. 그는 얼마나 아팠을까요? 어린 시절에는 자연 속에서 마음껏 뛰놀았던 아이였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자신의 일부를 포기해야 했어요.

그리고 결국 자신이 다 닳아버린 후에야, 자신이 진정 원했던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죠. 하지만 그때는 이미 자유를 향해 나아갈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아요.

이 장면을 보면서 <갈매기의 꿈> 책이 떠올랐어요.
갈매기 조나단 리빙스턴이 누구보다 자유롭게 하늘을 날았던 것처럼, 한스도 그런 삶을 살았다면 어땠을까요? 아니, 헤르만 헤세 자신도 결국 사회의 틀을 거부하고 자기만의 길을 걸었지만, 얼마나 많은 갈등과 고통을 겪었을까요?

자유를 꿈꾸는 모든 사람들은, 그렇게 상처받고 떠밀려야 하는 걸까요?

이 장면을 읽으며, 한스의 고통이 너무나 선명하게 와닿았어요. 그리고 한 가지 질문이 계속 떠올랐어요.
“우리는 정말 원하는 삶을 살고 있을까?”

죽음 속에서 찾아낸 자유

한스는 싸늘한 시체가 되어 어두운 강물을 천천히 떠내려가고 있었다. 역겨움과 부끄러움, 고통도 이미 그를 떠난 뒤였다. 푸르스름하게 차가운 가을밤이 어두운 물살을 따라 고요히 떠가는 그의 가냘픈 육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검은 강물이 그의 손과 머리칼, 창백한 입술을 찰랑이며 어루만졌다. 아무도 그를 보지 못했다. 날이 밝기 전 사냥에 나선 겁 많은 수달이 요사스러운 눈동자를 번득이며 그의 곁을 소리 없이 미끄러져 갔을 뿐이다. 그가 어쩌다 물에 빠졌는지, 아는 사람 역시 아무도
없었다. 아마도 길을 잃고 가파른 비탈에서 발을 헛디뎠을지도 몰랐다. 아니면 갈증이 나서 물을 마시려다가 균형을 잃어버렸을 것이다. 아름다운 강물에 정신이 팔려 그 위로 몸을 숙였는데, 창백한 밤과 새하얀 달, 지극한 평화와 깊은 안식이 그를 지긋이 마주보았고, 극심한 피로와 불안에 시달리던 그를 고요히 죽음의 그늘로 끌고 들어가 버렸을지도 몰랐다.

저는 이 장면이 너무나 아름답다고 느꼈어요. 차가운 강물 위로 떠내려가는 그의 모습은 슬프지만, 동시에 평온해 보이기도 해요. 마치 오랫동안 짓눌려왔던 고통과 불안을 모두 내려놓고, 마침내 자유에 닿은 듯한 느낌이 들어요.

글에서는 그가 어쩌다 강물에 빠졌는지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아요. 실수였을 수도 있고, 우연이었을 수도 있지만… 저는 역시 한스가 스스로 강물로 들어갔다고 생각해요.

그날 밤, 그는 직장 동료들과 술을 마시며 순간적인 즐거움을 느꼈지만, 그 행복은 결국 오래가지 않았어요. 왁자지껄한 웃음이 사라지고 혼자가 되었을 때, 오히려 더 깊은 외로움이 찾아오지 않았을까요? 사회가 요구하는 삶을 따르려 했지만, 그는 끝내 그 속에 온전히 녹아들 수 없었어요.

그리고,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그를 이해해 줄 수 있었던 사람, 하일너와의 관계가 끊어졌다는 사실이 결정적인 순간이 되지 않았을까 싶어요. 하일너는 한스에게 자유와 가능성, 다른 삶을 상징하는 존재였어요. 하지만 이제 그는 혼자였고, 더 이상 어디로도 나아갈 수 없는 상태였어요.

세상의 기대에 부응하는 것도, 자유를 찾아가는 것도 더는 불가능한 순간. 그 무게가 너무나도 버거웠던 한스는, 결국 이 세상에서 도저히 얻을 수 없었던 자유를 죽음을 통해서나마 손에 넣은 것 같아요. 꿈에서 봤던 힌디 처럼요.

이 장면이 유독 아름답게 느껴지는 이유도 그런 것 같아요. 죽음이 슬픔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한스에게는 하나의 ‘해방’이었기 때문이겠죠. 창백한 달빛 아래에서, 강물은 그의 손과 머리칼을 어루만지며 그를 조용히 떠나보내요.

이제는 더 이상 그를 옭아맬 교장도, 시험관도, 아버지도 없어요. 그저 깊은 밤과 조용한 자연만이 그를 감싸고 있죠.

세상에서는 결코 손에 넣을 수 없었던 자유, 그것을 한스는 마침내 찾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하지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자유를 갈망했던 한 소년이 결국 그 자유를 찾았지만, 우리가 바랐던 방식은 아니었잖아요. 그래서 더 안타까워요. 그리고 더 깊이 기억에 남아요.

‘수레바퀴’는 무엇을 의미할까?

책 제목에서부터 등장하는 ‘수레바퀴’라는 상징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저는 그것이 사회가 만들어놓은 거대한 체계, 그리고 그 체계를 거스를 수 없는 운명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책 중간에 보면 교장이 한스에게 “기운을 내서 공부해야지, 안 그러면 수레바퀴 아래 깔리고 말 거야”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어요. 이 말은 곧 “네가 사회가 원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결국 사회에 짓눌려 사라질 거야”라는 경고처럼 들려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는 보이지 않는 ‘수레바퀴’가 있고, 그 흐름을 따라가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메시지를 던지는 것 같아요.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헤세가 굳이 사회를 ‘수레바퀴’에 빗댄 것에는 다른 의미도 있지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수레바퀴는 창의적이지 않고, 단조롭게 계속해서 같은 모양으로 굴러가기만 하잖아요. 마치 개개인의 개성과 자유를 허용하지 않는 사회처럼요. 그 안에 들어간 사람들은 모두 비슷한 모습으로 살아가야 하고, 그 틀에서 벗어나면 버려지는 거죠. 헤세는 이 제목을 통해, 무조건 굴러가야만 하는 사회의 비합리성을 “수레바퀴” 라고 부르며 비웃은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래서 저는 이 책의 제목이 너무나도 완벽하다고 생각했어요. 단순히 ‘사회에 짓눌린 한 소년의 이야기’라는 의미를 넘어, 그 사회가 얼마나 무의미하고 비인간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는지 보여주는 상징이기도 하니까요.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이 수레바퀴 위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요?
정말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 걸까요, 아니면 그저 바퀴에 깔리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달려가고 있는 걸까요

이런 분들에게 이 책을 추천해요

📖 사회가 정해놓은 길에 대해 고민해 본 적 있는 분
학교, 직장, 사회의 기대 속에서 ‘이 길이 맞는 걸까?’ 고민해 본 적 있으신가요? 한스의 이야기를 통해 개인의 자유와 사회적 압박 사이에서 고민하는 모든 이들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거예요.

📖 교육과 경쟁 사회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가진 분
이 책은 단순히 한 소년의 비극이 아니라, 획일적인 교육 시스템과 사회의 압박이 어떻게 한 개인을 파괴하는지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고 있어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문제를 다루고 있어서, 특히 입시나 사회 경쟁에 지친 분들이라면 더욱 공감하며 읽을 수 있을 거예요.

📖 헤르만 헤세의 문학을 좋아하는 분
헤세 특유의 철학적인 문체와 상징적인 표현이 돋보이는 작품이에요. 특히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데미안》 같은 헤세의 다른 작품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이 책도 깊이 있게 즐길 수 있을 거예요.

📖 인간의 운명과 자유의지에 대해 고민하는 분
한스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자유의지와 운명, 사회의 틀 속에서 인간이 어디까지 선택할 수 있는지에 대한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게 돼요. 이런 주제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깊은 여운을 느낄 수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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